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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각각의 계절, 권여선 신작 소설집

by 🎶(ノ◕ヮ◕)ノ*:・゚✧💋 2023. 5. 12.

국내소설/ 한국소설/ 단편소설

새로운 계절과 함께 돌아온 권여선 님의 신작, 3년 만의 단편 소설집이다. 나는 잘 몰랐는데 베스트셀러에 있어서 눈이 가게 되었다. 우리를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권여선의 계절 소설은 서로를 이어주는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밧줄로 꼬아 더 단단하게 연결하기.

 

책 소개

한 끗이 만들어내는 차이,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 권여선 신작 소설집. 유려하고도 엄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이 삼 년 만에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펴낸다. 술과 인생이 결합할 때 터져 나오는 애틋한 삶의 목소리를 담아낸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으로 현실을 촘촘하게 새긴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이후 일곱 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봄날의 종합선물 세트처럼 한데 모였다. 1996년에 등단해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여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기억, 감정, 관계의 중핵으로 파고들며 한 시절을, 한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직시의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소설집의 처음과 끝에는 ‘기억’을 주된 키워드로 하는 「사슴벌레식 문답」과 「기억의 왈츠」가 한 쌍처럼 나란히 놓여 있어 『각각의 계절』을 둥그렇게 감싸 안는다. 오랫동안 외면해 온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아연함과 서글픔을 그려낸 「사슴벌레식 문답」은 권여선의 오랜 주제인 기억의 문제를 한 발짝 더 밀고 나간 빛나는 수작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은 낯선 공간에 던져진 새끼 오리들처럼 초창기에 대학가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듯 ‘준희’와 ‘부영’, ‘경애’, 그리고 ‘정원’ 역시 그랬다. 대학교에 입학해 같은 하숙집에서 살게 된 이들 넷은 함께 술을 마시고 일상을 공유하며 친밀하게 지낸다. 모임의 리더 격인 시원시원한 부영과 규칙적이고 예의 바른 경애,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은 정원, 그리고 술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소설의 화자 준희는 해가 바뀌고 거주 환경이 달라진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려 하고 서로의 생일을 결사적으로 챙긴다. 네 사람이 아름답게 그려나가던 궤적은 그러나 정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경애의 배반으로 엉클어지고 만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뿐이라는 사실만이 선명한 지금, 준희는 지난 세월을 엄격하고 절박하게 돌이켜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억의 중추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사슴벌레식 문답’이다. 오래전 네 사람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정원은 숙소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방충망도 있는데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느냐고. 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윽고 이렇게 답한다. 어디로든 들어와. 그리고 가버렸다. 사슴벌레를 대변하는 듯한 그 말에 나는 실로 감탄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어디로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어디로든 들어왔다고 대답하기. 준희와 정원은 상대의 질문을 그대로 받아서 따라 하는 이 대화의 방식을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이름 붙이며 ‘마법의 버튼’이라도 생긴 듯 여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준희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고 정원은 연극을 하길 바라는, 다시 말해 두 사람 모두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어떤 연극을 하고 싶은지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어떤 소설이든 쓰고 싶고 어떤 연극이든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이 사슴벌레식 문답을 통해 두 사람은 어떤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산뜻하고 명료한 사슴벌레식 문답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준희의 시선 속에서 점차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어간다. 그 대답에는 당시에는 읽어내지 못한 ‘무서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하지만 권여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슴벌레식 문답에 담겨 있을 또 다른 의미를 헤아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록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다치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하더라도.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는 소설 속 말을 빌린다면, 직시함으로써 스스로가 과녁이 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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