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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토록 평범한 미래, 종말 이후의 사랑

by 🎶(ノ◕ヮ◕)ノ*:・゚✧💋 2023. 2. 2.

한국소설/ 김연수

종말 이후의 사랑

작가 김연수가 짧지 않은 침묵을 깨고,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 이후 9년 만에 여섯 번째 소설집을 펴낸다. 그전까지 2~4년 간격으로 꾸준히 소설집을 펴내며 ‘다작 작가’로 알려져 온 그에게 지난 9년은 “바뀌어야 한다는 내적인 욕구”가 강하게 작동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도 바뀔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진”(특별 소책자 <어텐션 북> 수록 인터뷰에서) 시간이었다. 안팎으로 변화를 추동하는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연수는 소설 외의 다른 글쓰기에 몰두하며 그 시간을 신중하게 지나왔다. 변화에 대한 내적인 욕구와 외적인 요구는 작가를 어떤 자리로 옮겨오게 했을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작가가 최근 2~3년간 집중적으로 단편 작업에 매진한 끝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김연수의 변화된 시각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김연수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시간을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우리가 현재의 시간을, 즉 삶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설득해 낸다. 특별한 점은 그 가능성이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바꾸어내는 경이의 순간

세계의 끝과 사랑의 시작이 어떻게 함께 놓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미래'를 키워드로 두 개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첫 번째는 1999년 여름에 일어난 '나'와 '지민'의 이야기다. 스물한 살의 '나'는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지민과 같이 외삼촌이 편집자로 일하는 출판사로 향한다. 출간이 금지되어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장편소설, 그러니까 지민의 엄마가 자살하기 전에 쓴 <재와 먼지>가 어떤 책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평생 책만 읽어온 외삼촌은 1970년대에 나온 그 책을 떠올리고는 내용을 설명해 주는데, 두 사람은 줄거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여기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에는 한 연인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하는 시간의 끝, 즉 사랑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정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동반자살을 한 그날이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 되고, 자고 일어나면 그 전날이 되는 것이다.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지민이 놀란 이유는 바로 그 줄거리가 자신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해 여름 동반자살을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계획을 들은 외삼촌은 <재와 먼지>에 대해 이어서 설명한다. 그 소설에서 연인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자신들이 얼마나 기쁘고 설렜는지도.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두 번째 삶에서 그들은 그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먼저 경험한다. 미래,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과거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동안 두 사람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깨닫게 되고, 그 끝에서 시간은 다시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우너래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외삼촌은 긴 얘기 끝에 두 사람에게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책 리뷰

각기 다른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제부턴가 일상이 하나 둘 무너지면서 어긋나고, 전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에서 멈추지 않고 방향을 찾아 걸어가는 것 또한 나의 의지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잠깐의 그러한 생각들이 그저 떠다니는 생각들일뿐이지. 이 생각들은 정답이 아니고, 나의 운명이 아니고, 그저 자연재해 같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일어날 일이었던걸. 다시 일어나면, 상실의 흔적을 뒤로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 볼 수는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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