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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

by 🎶(ノ◕ヮ◕)ノ*:・゚✧💋 2023. 2. 2.

한국소설/ 정지아

'아버지가 죽었다.'로 소설은 시작한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우리말 문장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문장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졌다. 주어와 서술어를 꾸며주는 말이 없다. 죽음 앞에서는 어떤 수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러다 소설은 첫 문장의 주어인 아버지를 꾸며주는 말로 끝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그러니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 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빨치산의 딸, 한국문학의 딸로" 정지아라는 센세이션

32년 전 정지아의 등장은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판매금지와 공안 당국의 기소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핍진한 서술과 역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제 정지아는 그 태도에 더해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관록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손을 꼭 붙들어놓는 대가의 면모까지 갖추었다. 32년 만에 내놓는 이 소설로 정지아가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의 귀하디 귀한 딸"(소설가 김미월)이 되었다는 말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책 리뷰

첫 문장에서 당황스러울만했다. 아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시작하자마자 돌아가시다니, 실망도 잠시, 바로 뒷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를 무거운 족으로 가져가지 않고 무거움에 해당하는 주제인데도 가볍게 풀어낸 것 같다. 화자의 입을 통해서만 전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구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간접적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전에는 굉장히 밀도 높은 문장과 아주 섬세한 정서들, 그리고 그 정서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것들이 매력이었다면 이 책은 이야기가 주가 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주가 되는 그래서 남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아버지를 마냥 탐구하는 게 아닌 주변 사람들을 통해 풀어낸 이 소설,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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