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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by 🎶(ノ◕ヮ◕)ノ*:・゚✧💋 2023. 2. 2.

세계의 문학/ 일본소설/ 이치조 미사키

매일 기억을 잃는 너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랑을 했다. 평범하지 않은 소녀와 지극히 평범한 소년의 이 세상 단 하나뿐인 특별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이 사랑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반전. 상상만해도 힘들 나날인데 이 글은 쓴 저자의 시점이 참으로 궁금하다.

매일 기억이 사라지는 잔혹한 현실

제26회 전격소설대상 ‘미디어워크스문고상’ 수상작. 밤에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소녀 히노 마오리와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 가미야 도루의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술술 읽어나가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대단할 뿐 아니라 결말로 달려가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해 독자를 큰 충격에 빠뜨린다. 일반적인 청춘 소설의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충격적인 사건을 과감하게 배치해 독자에게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솜씨가 신예 작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감탄을 자아낸다. “날 모르겠지만, 사귀어줄래…?” 어쩔 수 없이 건넨 도루의 거짓 고백을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지킬 수 있어?”라는 조건을 걸고 허락한 히노. 조건부 연애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이지만 연인이 아닌 이 특수한 관계는 ‘매일 기억이 사라지는’ 잔혹한 현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이들 사랑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조건부 연애를 시작한 도루와 히노는 매일 방과 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이면 도시락을 싸 들고 벚꽃 구경을 가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쌓아간다. 아직 사랑이라 부르기엔 조심스러운, 두 사람의 설익은 감정이 흩날리는 봄의 벚꽃, 초여름의 자전거, 한여름의 불꽃놀이와 같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통과해 가며 점점 무르익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첫사랑의 아련한 감성, 막 시작하는 사랑이 품고 있는 두근거리고, 긴장되고, 아슬아슬한 그 감정을 계절에 따른 변화와 싱그러운 이미지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제 막 쉽지 않은 사랑을 시작한 두 주인공의 곁에는 각자의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탱해 주는 다양한 인물이 있다. 약간 비만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의 대상이 된 시모카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약해져 버린, 하지만 아직도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아버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을 떠난 누나, 도루와 히노의 사랑을 바로 곁에서 응원하고 도와주는 이즈미 등 현실감 넘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더불어 이 책은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청춘이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방황, 그 속에서 나름대로 길을 찾고 나아가는 모습 또한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가족 간의 갈등을 외면하고 묻어두기만 했던 도루, 우연한 사고로 얻은 '선행성 기억상실증'으로 고통받는 히노, 부모님의 별거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이즈미, 이유 없는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친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시모카와 등 흔들리고, 부딪히고, 나아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능숙한 완급 조절을 통해 섬세하게 엮어냈다. 독자는 이들이 경험해 가는 성장통을 지켜보며 자신의 청춘 시절을 떠올리고, 처음 마주하는 삶의 고난을 진지하게 헤쳐 나가는 모든 청춘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리뷰

진부한 소재를 뛰어넘는 깊은 몰입감과 감정묘사,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타임머신과도 같은 작품이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하고 마음이 아려오는 이야기였다. 세밀한 감정선이 독자들의 보편적 정서와 맞닿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걸 보면 이것을 마냥 배척하거나 외면할 일도 아닌 듯싶다. 특히 남자 주인공 도루의 다정함, 내일의 마오리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진심을 다해 매일매일 상대를 즐겁게 해 주고 같이 기뻐하는 마음, 그 애의 하루를 즐거운 이야기로 채워주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아끼고 사랑하는 도루의 마음이 담백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으로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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